자기SELF를 회복하는 글쓰기
ㅡ스스로 하는 SELF 심리상담
마음은 흘러야 합니다.
흐르지 못하고 있다면, 그 첫번째 단계는 표현하기입니다.
표현하려면
귀 기울여 느껴야 하고
느끼는만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그 마음의 전체상이 가능한 만큼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전체상이 드러날수록, 그 마음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해되지 않기에 억압하거나 제거하거나 통제하려 하게 되고
이것이 마음이 흐르지 못하게 되는 주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인지 범위 밖으로 밀려나 잘 자각되지 않습니다.
잘 자각되지 않는 어두운 영역으로 밀려났기에,
손쉽게 왜곡하고 합리화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 가장 쉽게 일어나는 것이 투사입니다.
쉬운 말로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부당하게 타인, 상황 혹은 세상을 향해 분노하며, 자신을 피해자로 묶는 경우도 쉬이 생겨납니다.
자아의 메인 테마가 상처입은 자, 피해자로 설정되는 것은 현대사회의 문화적 환경 속에서 만연하고 있는 현상인데, 이는 개인에게 극도로 해롭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만연해 있기에 자각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수한 이들에게 최면적 현실로 경험되고 있으며, 이것이 문제라는 사실조차 은폐되어 있습니다.
부지불식 간에 피해자성을 정체성의 중핵으로 삼는 이러한 현상만 중지할 수 있어도, 대개는 심리치료나 상담이 필요없는 원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피해자가 됨으로써 정당한 분노를 두르고 상처를 갑옷처럼 방어할 수 있게 되며, 동정적인 지원군도 모을 수 있기에 단기적으로는 이득이 큽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피해자 정체성에 갇히게 되면, 근본적으로 그러한 자아는 힘을 잃게 됩니다.
또한 상호성의 원리에 의해, 나 자신의 좌표계 값이 피해자로 고정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의 바깥 세계는 잠재적 가해자로 고정됩니다.
그런데 내가 피해자로 고정되는 것과 외계가 가해자로 고정되는 것은 상호연기적으로 동시에 일어나는 이벤트입니다. 그리고 이 이벤트의 실행자이자 유지 권한자가 바로 나 자신이기에, 다른 누구도 이것을 절대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 누구나가 가진 고유한 힘입니다.
선택하는 힘만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나는 바로 그러한 존엄하고 강력한 고유 권한을 행사하여, 주변 세계를 비우호적인 가해자 내지 잠재적 가해자로 고정시킴으로써, 내 삶의 흐름을, 날씨를, 기후를 거칠고 험난한 것으로 물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에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는 내 삶의 전반적인 정조와 분위기를 비우호적이고 거친 것으로 망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비극인 동시에 놀라운 점은, 바로 스스로의 힘으로 그렇게 한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내 삶의 날씨를 흐리고 거칠게 만들 수 있다면,
포근하고 맑게도, 기분좋은 바람이 불어오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존엄한 힘입니다.
마음이 잘 흐를 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힘을 갖게 됩니다.
마음이 잘 흐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상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어 흐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흐름에 거스르며 힘을 소진하는 불필요한 투쟁을 하지 않고,
도리어 세상의 흐름으로부터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세상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시류와 영합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의 근본적 욕망 중 하나는 바로 그렇게 힘있는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자존감이라 부릅니다.
삶의 생생함을 느끼며, 자신의 생명력을 능동적으로 써서 무언가를 할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낍니다. 잘 살고 있다 느낍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을 때 참으로 잘 살았다 느끼며 눈 감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피해자가 되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피해자/가해자라는 이분법으로 빠르고 쉬운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 더딘 것처럼 보이지만 입체적이고 온전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인지,
혹은 일어나고 있는 중인지를 투명하게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한 마음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란 어딘가 별개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함께 흐르고 있는 나라는 주체와 세상이라는 객체 사이의 접촉에 의해 늘 실시간으로 피어오르고 함께 흐르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내 마음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세상을, 나와 연관된 그 사람을, 그 상황을 깊이 이해하게 됨을 뜻합니다.
세상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은 대개의 경우 단순하지 않습니다.
복합적인 양상을 띠며, 다의성을 띱니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에 쉽게 포기하고, 평면화 시키고, 단순한 이분법으로 환원시키는 것입니다. 좋은 면은 나에게 할당하고, 나쁜 면은 타인과 세상에게 할당하기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고통을 경험합니다.
이에 대한 유일한 치료제는 통합적인 이해ㅡ온전한 이해 뿐입니다.
오직 이해되지 않는 것만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두렵게 하는 것을 피하고자 그것을 압축파일로 만들어 내면에 억누르거나 외부로 투사하며, 그러기 위해 나의 생명력을 고정적으로 할당하여 과다 지출하게 됩니다.
두려운 것은, 이해되면 더는 두렵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나의 생명력은 회복됩니다.
생명력을 회복한 나는 강해집니다.
무엇을 글로 써야 할까요?
은폐된, 은폐하고 있는, 은폐하고 싶은 것을 써야 합니다.
부정된, 부정하고 있는, 부정하고 싶은 것을 써야 합니다.
외면된, 외면하고 있는, 외면하고 싶은 것을 써야 합니다.
스타트는 '잘 모르겠다'로 시작합니다.
모호하고 두리뭉실한 상태로 출발해서, 점차로 그림을 완성해 나가게 됩니다.
다 그려내기 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그리게 될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이전에는 의식 일변도였다면,
의식과 무의식이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생각과 감정과 느낌/감각이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전인全人으로서의 글쓰기입니다.
나와, 내 주변세계가 Holistic하게 참여하는 글쓰기입니다.
마음이란 본래 Holistic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융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자기SELF를 지향하며 쓰는 것입니다.
또한 자아ego가 자기SELF의 도움을 받아 자기와 함께 쓰는 것입니다.
그로써 지금 필요한 만큼의 온전한 이해를 얻고,
얻게 된 이해만큼의 온전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즉, 나는 그만큼 자기와 가까워지게 됩니다.
달리 말해 이것은 글쓰기를 통해 개성화의 길을 걷는 방법입니다.
본 작업의 이름이 '자기를 회복하는 글쓰기'인 이유입니다.
항상 애씀없는 행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ㅡAlchemic Linguist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