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보내드린 메일 중, 맨 마지막 팟캐스트 링크 주소가 잘못되어 있었네요. 이를 정정하여 다시 보내드렸습니다. 발송 전에 한 번 더 꼼꼼히 살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융 심리학 공부에 한창 재미를 붙여가고 있던 십여 년 전, 융과 프로이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에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영화는 바로 마이클 패스밴더, 비고 모텐슨, 키이나 나이틀리가 주연한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Dangerous method(2011)'였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심층심리연구소에서 분석심리학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요. 수업을 함께 듣던 분들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의 개봉 날짜만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윽고 개봉 당일.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만...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저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아니야... 내가 생각하던 융 선생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야..!'
영화는 융의 자서전에 담긴 내용들과 융의 사후에 공개된 문서들, 융과 프로이트가 교환한 서신 등을 자료로 해서 구성되었는데요.
극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융과 사비나 슈필라인 사이의 불륜이었습니다. (사비나 슈필라인은 융의 환자였다가 연인이자 제자로, 그리고 나중에는 프로이트의 제자를 거쳐 훗날 정신분석가가 되는 인물입니다.)
그밖에도 영화는 융이 가진 불완전한 면모들, 비겁한 모습, 번민하는 모습, 멘탈이 무너지는 모습 등을 적나라하게, 그러나 평가하지 않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융을 위대한 현자로 바라보며 온갖 좋은 것들을 그에게 투사하고 있었는데요. 이 영화는 융에 대한 과도한 이상화를 멈추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융에 대한 이상화를 품고 있었을 때, 그것은 학습의 동력이 되어 마치 솜뭉치가 물을 빨아들이듯 융의 텍스트들을 흡수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이미지를 그에게 투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텍스트를 오독하고 필요 이상으로 그를 신비화 하게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얼마 전, 영화 전문 팟캐스트인 '듣보영화'에 심리학 전문 게스트로 초대되어 4회에 걸쳐 방송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요. 그 첫번째 영화가 바로 데인저러스 메소드였습니다. 방송을 위해 오랜만에 다시 한 번 영화를 감상했는데, 11년 전 첫 감상 때와는 많이 다른 감흥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분야의 선구자로서 삶을 걸고 앞으로 나아갔던 융과 프로이트의 모습에서, 오히려 그들의 결점과 나약함들을 통해서 사람다운 온기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천재적인 지성과 재능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지만, 동시에 그들 역시 한계를 지닌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 그 사실을 마주하며 역설적이게도 그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자연스레 품을 수 있었던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칼융의 심리학을 공부하는 데 관심이 있으시다면,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를 감상해보시길 권해드려 봅니다. 그리고 영화 내용을 다룬 팟캐스트 방송도 함께 들어보신다면 재미와 의미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되시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스포일러를 개의치 않으신다면 방송을 먼저 듣고 영화를 보셔도 좋겠지요.